휴가 길어질수록 고단해지는 곳들이 있다면 아마 병원 응급실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추석처럼 연휴가 일주일 가까이 길어지는 때면, 응급실은 평소의 두세 배를 상회하는 수의 환자들로 연일 북적거린다.
연휴 중 응급실에서 인턴 근무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식은땀이 흐르고 귓가가 멍해질 정도로, 그때의 정신없던 응급실이 느껴진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연휴엔 응급실이 그 어디보다 바쁘고 정신없어진다.
연휴에 응급실을 들이닥치는 인파는 각양각색의 사정과 이유들로 병원 문을 두드린다. 물론 정말 응급한 조치가 필요한 위급한 환자들도 많지만, 일주일 가까이 온갖 병원들이 문을 닫는 통에 응급하지 않은 환자들 또한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연휴 중 병원의 사정이다. 응급실 인턴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엔 별 것도 아닌 걸로 바쁜 연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별로 심하지도 않은 증상으로 언성을 높이고 앓는 소리를 내던 그들이 마냥 밉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정신건강의학과에 몸을 담게 된 입장의 오지랖으로 그때를 다시 되돌아보면, 그들의 면면이, 그들의 사정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모두가 기대하는 꿀 같은 황금연휴에 앓아누워야만 했던 그들의 사정들이 말이다.
명절증후군은 사실 이미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문화적 현상이 되어 버렸다. 명절 증후군은 과중한 가사 노동이나 장시간의 정체 구간 운전, 생체 리듬의 변화 등으로 인한 신체적 피로에 의한 증상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이면서 받는 각자의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어느새 우리들이 떠올리는 추석의 전형적인 모습이란 것도,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날 선 잔소리 경연대회를 펼치는 한 장면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서로를 향한 잔소리와 싸움의 이미지가 명절이라는 단어와 조건화되어 버린 듯하다.
달력을 붉게 물들인 연휴의 그림자만 보아도 해를 거듭하며 서로를 후벼 팠던 날 선 목소리들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남들은 추석 연휴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상을 버틴다지만, 하루하루 연휴가 다가올수록 짜증만 차오른다. 품평회에 끌려 나온 식용 돼지라도 된 것만 같은 가시방석이 두렵고, 바늘로 뒤통수를 콕콕 찔러대는 것만 같은 핀잔의 향연들이 두렵다.
과연 누구를 위한 연휴이고 명절인 것일까. 그저 연휴를 틈타 멀리 도망이나 쳐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남들은 연휴에 해외여행도 잘만 다닌다던데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억지로라도 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연휴란 그저 죽을 맛이다. 그렇게 끙끙 앓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리는 게, 없던 병마저 생기는 듯하다. 속이 메스껍고 눈앞이 핑핑 도는 게 도저히 서 있기기 쉽질 않다. 정말 어디 병이라도 난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몸이 먼저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하나둘씩 응급실을 향한다.
스트레스와 갈등에 대처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인 방어기제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신체화(somatization)’이다. 표출하지 못하여 억압되기만 하던 내적 갈등은 간혹 신체적인 증상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내게 되기도 한다. ‘신체화’되는 것이다. 신체화는 본인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고 소화하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을, 좀 더 직관적이고 익숙한 신체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 주변 사람들은 잘 알아주지 못하는 나의 내면의 고통을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어떤 신체적 증상과 연관된 과거의 기억에 의해 조건화된 반응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신체화된 갈등은 엑스레이나 CT, MRI 같은 영상학적인 검사나 혈액검사 혹은 다른 어떤 이학적 검사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주관적으로는 분명한 통증이나 증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내과나 신경과, 정형외과 등을 찾아다니며 여러 종류의 증상이나 통증을 호소하지만 정신과적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들 중 많은 부분이 이러한 신체화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러한 신체화를 보이고 있으며, 정신과적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들 중에도 신체화에 의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무척 많다.
신체화된 증상/신체화 장애의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증상을 사람들이-심지어 의료진조차도 ‘꾀병(malingering)’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이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신체화의 과정이 꾀병의 경우엔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신체화 장애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남들은 다 알아차리지만, 본인은 죽어도 못 알아차리는, 죽어도 아니라고 하는 버릇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던가. 실제로 증상을 신체화하는 환자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의 증상이 ‘신경성’임을, ‘정신적’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무의식과 직면하지 못한다. 본인은 정말로 머리가 아프고, 정말로 어지럽고, 정말로 고통스러우니 말이다. 심지어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 환자들의 경우에는 신체 일부의 마비나, 감각실조, 실어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신체화를 보이는 환자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증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가장 첫걸음이다. 그 뒤에, 차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엉켜버린 매듭을 하나씩 하나씩 더듬어주는 것이 치료를 향한 길이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신체적 증상들 밑에는 얼룩덜룩하게 멍든 각자의 상처받은 마음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퍼런 상처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손길이 먼저 있었더라면, 그것들이 육체의 고통으로까지 드러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을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한가위다. 사실, 휘영청 가득 찬 보름달 밑에 대가족이 시끌시끌 둘러앉아 화목하게 송편을 빚고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이제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힘들게 되어 버린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니 예전에도, 그 옛날 조선시대, 고려시대에도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란 것이 모두에게 그렇게 마냥 즐겁고 행복한 날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모습들이 다 그런 법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각박해져만 간다는 현대 사회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디에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아눕게 되는 날이 다름 아닌 명절이란 사실은 못내 씁쓸하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상처 주고 끌어내리기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피로한 영혼들이 그 모든 괴로움을 차마 입 밖으로도 내지 못하고 온몸으로 몸부림치게 되는 날이 바로 온 가족이 모인 명절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온 세상이 나를 뜯어먹으려 눈을 부릅떠도, 오직 나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줄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나의 마음은 슬프게도 더욱 외로워진다. 더욱 상처받고 있다. 가족이기에 더 말하지 못해 아픔은 신체화되어 버린다. 가족마저 서로를 외롭게 하는 사회는 너무나 서글프다. 명절을 맞아 가족이 서로에게 지니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이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못했던 만큼, 어쩌면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그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을지 말이다.
출처 : 건강연구회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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