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on Schiele 에곤 실레
1890.6.12 ~ 1918.10.31 오스트리아
에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빈 미술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을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학풍과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1909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새롭게 등장한 아르누보 양식을 선호했고, 바로 이 시기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만나 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08년 빈 분리파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으며, 학교를 나온 후에는 몇몇 친구들과 ‘신예술가그룹’을 결성했다.
실레는 초기에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그래픽적이고 드라마틱한 양식을 선보였다. 그러나 점차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표현주의자로서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그리고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며,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했다. 때때로 작품의 배경은 비워두어 고독과 단절감을 강화시켰다.
1913년 실레는 클림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예술가 동맹’의 회원이 되었으며, 빈 분리파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베를린의 평론지 『디 악티온』의 편집진에 합류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1915년 에디트 하름스(Edith Harms)와 결혼했다. 실레는 바로 군에 징집되어 러시아 전쟁 포로를 호송하는 일에 배치되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그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는 유럽의 주요 전시회에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재정적인 안정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실레는 1918년 클림트의 사망 이후 오스트리아를 이끄는 예술가의 지위에 올라서게 되며, 그해 3월 빈 분리파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클림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가족》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그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그 자신도 독감에 감염되어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은 지 사흘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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